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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백내장으로 시각장애인이 되었지만 마음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 Manmin News No. | 2007-02-25

- 이소영 자매 (2대학선교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2학년 재학)

"이제는 보이기 시작해요"

시각장애인에게 주어진 천부적 음감(音感)

저는 '선천성 백내장'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무려 네 차례나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겨우 눈앞에 물체들만 흐릿하게 볼 수 있었기에 2001년에 시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았고, 2004년에는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이런 저에게 유일한 친구는 3살 무렵부터 치기 시작한 피아노였습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한 번 들은 곡이나 음악은 바로 기억해서 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공사장에서 들리는 망치 소리, 바람 소리까지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하나의 음(音)으로 들려왔습니다.

역경을 딛고 음대 과 수석으로 합격

2001년 말, 음대에 지원하였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낙방하게 되자 일말의 소망마저 빼앗겼다는 패배감에 툭하면 화를 냈고 가출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2003년,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그동안 생계를 책임져 오셨던 어머니가 사업에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생계가 극도로 어려워지자 어머니께서는 저와 정신지체가 있는 언니를 공원 한구석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한참 머뭇거리셨습니다. 그리고는 쥐약 봉지를 여시더니 "우리 죽자."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우리 죽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리 함께 잘 살아봐요."

저희 세 모녀는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요. 그날 이후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기로 다짐하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에 수석합격을 하게 되었고 2006년에는 성악을 전공하고 싶어 성악과로 전과했지요. 음악은 제 삶의 전부가 되었고 피아노를 등지고 서서 또는 손을 어깨 위로해서 자유자재로 피아노를 치는 등 정상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민중앙소식』지를 통해 본교회로 인도받아

2005년 7월, 우연히 지하철 안에서 「만민중앙소식」지를 보고 저는 가족과 함께 만민중앙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영적인 갈증으로 답답했던 제 마음은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력 넘치는 말씀으로 해갈되었고, 저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섬세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나서 힘들게 살아야 할까!' 했던 마음이 '하나님께서 내게 잘 할 수 있는 것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지요.

감사의 삶으로 변화되니 축복이 넘쳐

이처럼 원망, 불평, 짜증과 혈기에서 기쁨과 감사, 행복과 소망으로 채우게 되니 하나님께서는 영육간에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2006년 3월, 금요철야예배 2부 순서에 제가 작곡한 곡으로 특송할 뿐 아니라 2007년 1월에는 찬양과 연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GCN(세계 기독방송 네트워크)을 통해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도전이 되었지요.

또한 저에 대한 소문이 방송과 잡지 등 각종 언론매체에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4대 방송(KBS, SBS, MBC, EBS)과 케이블 TV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고, 레이디경향과 조선일보 등 유명 잡지와 신문에서도 제 기사(記事)가 실렸으며 곧 출판사의 도움으로 자서전도 출간될 예정입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시력이 좋지 않고 안압(眼壓)의 수치가 높아 때론 넘어지거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으나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통해 치료된 것입니다. 또한 왼쪽 눈도 점점 호전되어 사람들의 표정과 사물의 형체도 조금씩 구분해 나갈 수 있게 되었지요.

온유하고 겸손하게 주님을 높이는 것,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소망과 기쁨을 선사하는 것! 이것이 제 삶의 이유입니다. 제게 주신 달란트로 온 맘 다해 주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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