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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중국,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의 권능이 신장결석으로 병든 아들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 Manmin News No. | 2001-02-25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요 4:53)

중국 하얼빈 태생인 저는 1990년도 초부터 지역 신문사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물질에 대한 욕망이 생기면서 그 동안 모은 재산으로 식당업, 자동차 매매업 등에 손을 댔다가 자금 압박으로 인한 연쇄적인 부도의 위기에 몰려 결국 파산하고 말았지요.

사업 실패 후 돈을 벌고자 한국행 배를 타고

저는 큰 충격을 받고 실의의 나날을 보내며,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아내의 도움으로 간신히 끼니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사디양, 20세)은 신장 결석(腎臟 結石)으로 거의 학업을 포기해야 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 증세가 간헐적으로 일어나 급작스레 병원에 실려 가곤 했습니다.
40대 가장으로서 생활비를 조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기만 할 뿐 변변히 치료해 줄 수 없는 아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가면 날품팔이를 해도 중국에서보다 열 배 정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주변을 정리하였습니다.
1998년, 저는 "돈을 벌어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가족을 떠나 한국행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니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어 의식주 문제를 제가 마련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물론, 시간이 갈수록 얼마 남지 않은 돈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저를 당황케 한 것은 언어 장벽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벙어리와 다름이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앉아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손짓 발짓으로 가게에서 생필품을 사고, 거처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지요. 그 때 심정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지요.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좌절감을 교회를 통해 극복하니

약 3개월 동안 고통과 방황 속에 헤매고 있던 저는 가족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면 중국에 전화를 걸어 힘과 위안을 얻곤 했습니다.
"여보! 별일 없소? 사디양은 좀 어떻소?"
"여기는 괜찮아요. 당신은 어떠세요? 몸은 건강하시구요?"
"별일 없소. 당신과 사디양을 위해 참고 견뎌야지. 조금만 참고 기다리구려."
"여보! 힘들 때면 교회에 나가세요. 하나님을 찾아 평안과 위로를 얻으세요."
얼마 후 수소문 끝에 외국 근로자들이 모여 교류하는 곳을 찾아 친분을 갖기 시작했고, 아내의 조언대로 중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로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프레스 공장에 취직하여 고된 일과 속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살았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공장에서 만민중앙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인 성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본교회 최점순 집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전도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뜨거운 관심과 사랑 덕분에 타향에서의 외로움과 좌절감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본교회 중국교구를 통해 참믿음을 소유하고

마침내 1999년 7월 25일, 교회에 출석해 보니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한족(漢族)과 조선족들이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오랜만에 속을 탁 터놓고 고향과 가족 이야기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교회에는 중국어 동시통역 시설이 구비되어 있어 별 어려움없이 설교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며, 중국 교구가 별도로 편성되어 있어서 교회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가는 것이 즐거웠고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자체가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놀라운 기사와 표적, 희한하고도 기이한 일들과 매주 선포되는 생명의 말씀을 보고 들으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특별히 '99년 11월, 설교 중에 파키스탄에 있는 신시아라는 어린 아이가 풍토병인 셀리아크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그 언니 마리아가 가족사진 위에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치료받았다는 간증을 접하고 얼마나 기뻤는지요.
순간적으로 중국에 있는 아들이 생각나면서 믿음이 왔습니다.

"그래,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해서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자"

저는 2000년 설날 연휴 때 중국 교구 식구들이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구정 인사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틀 동안 금식과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설날 당일에 설레는 마음으로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지요.
"하나님, 아들의 사진 위에 기도를 받을 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드디어 사택을 방문하여 인사를 마친 후, 윤영자 교구장님의 통역을 통해 아들의 질병을 치료받기를 원한다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당회장님, 사진 위에 기도해 주시면 아들의 신장결석을 치료받을 줄 믿습니다."
저의 믿음의 고백을 들으신 당회장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 밝게 웃으시더니 사진 위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신장결석과 발작 증세를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얼마나 제 마음이 충만했던지 하늘을 나를 듯이 가벼웠습니다.

"여보, 신장 결석이 하나도 없이 사라졌대요!"

며칠 후, 아들이 치료받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중국에 안부 전화를 하였더니 아내가 이렇게 답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사디양이 정기 검진을 받았는데 신장 결석이 하나도 없이 사라졌대요. 발작 증세도 깨끗이 없어졌어요. 병원에서도 참 신기하대요."
"그래?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군! 사디양이 얼마나 기뻐하겠소. 수고했소."
제 눈에서는 기쁨과 감동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보장하사 시공간을 초월하여 베푸신 치료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 후 사디양은 공부에 전념하여 2000년 9월, 하얼빈 사범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습니다.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는데 저는 이 일을 계기로 더욱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1월 말, 중국에 있는 아내가 갑자기 팔에 계란만한 혹이 생겨 진단을 받았는데 그대로 두면 암으로 전이(轉移) 될 수도 있으므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제가 보내 준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은 손수건을 얹고 믿음으로 기도하였답니다. 그러자 약 2주 만에 계란만한 혹이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한국에서 생명의 말씀과 귀한 제단을 만났으니 앞으로 중국에 돌아가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것입니다. 사랑과 권능으로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기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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